[오피니언] 문화프리즘-한수산 게재 일자 : 2011년 08월 16일(火)
그분들이 꽃이 되는 그날
한수산/작가, 세종대 인문과학대 교수·국문학
그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는 장윤정의 ‘꽃’이다. ‘날 찾아오신 내 님 어서 오세요/어디서 무엇하다 이제 왔나요’로 시작해서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로 끝나는 이 노래를 할머니는 무척 좋아하고 또 잘 부른다. 할머니는 재주도 많다. 장구를 잘 치는가 하면 놀랍게도 일어가 유창하고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한다. 그러나…할머니는 우리에게 슬픔이다. 광복의 그날이 오면 더 슬프다.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수집강박증’이라는 낯선 이름의 병을 앓고 있다. 무엇이든 모으고, 모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방에다 쌓아놓는다. 겨우 자신이 꼬부리고 누울 자리만 남겨놓고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는 방에는 악취가 나고 바퀴벌레가 득시글거린다. 이 할머니가 우리에게 슬픔이 되는 것은 이 낯선 병명 때문만은 아니다. 할머니는 경기도 광주시에 자리한 ‘나눔의 집’에 사시는 일본군대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2006년 숙소의 개축을 위한 공사를 할 때는 천장까지 치쌓여 있던 물건이 트럭으로 실어 나르게 쏟아져 나왔다. 후원자들이 가져온 선물들이, 자신이 시장에서 산 옷가지와 먹을 것들이 켜를 이루며 쌓여 있었던 것이다.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는 일종의 불안장애다. 심리학자들은 의식 속에서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불안이 강박사고를 유발한다고 본다. 광복 이후 그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반복적으로 의식을 찔러대는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방은 위안부 피해자의 어제를 통곡하게 하는 상징이 되고, 할머니가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라고 노래할 때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쓰라린 역사의 강이 된다.
지난 13일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안식처인 ‘나눔의 집’ 뜰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다섯 분의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최초의 공개증언으로 캄캄하게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 봉인되었던 일본군대위안부의 진실을 세상의 햇빛 속에 드러나게 했던 김학순 할머니도 계시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는, 생전에 남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오래된 녹음 테이프를 풀어내어 그 육성을 역사의 기록으로 영구히 보존하는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작업도 있다. 역사의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여전히 아물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이러한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는 오늘도 역사 왜곡을 일삼는 무리는 일본의 우익만이 아니다. 이름부터 여전히 ‘종군위안부’라는 일본의 용어를 쓰고 있는 한국인도 있다. 정론(正論)은 정명(正名)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일본은 할머니들을 ‘돈 벌러 간다’ ‘공장에 간다’고 속여서 위안부로 끌고 갔다. 독일은 유대인들을 속여서 수용소로 데려갔고, 샤워를 하라면서 옷을 벗게 한 뒤 가스실에 넣고 학살했다. 그들의 머리카락으로 카펫이 만들어졌고, 피부는 벗겨져 비누가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말이 붙어 있다.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자유로워졌는가.
2006년 2월20일 오스트리아 법정은 나치 치하의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부인한 혐의로 영국의 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에게 준엄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가스실 대학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그를 체포해 징역 3년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11개국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오스트리아는 최고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사에 대해 무슨 방어장치를 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은 끝내 인간이 기억해야 하는 사랑, 아름다움, 꿈에 대한 절망이 되었으며, 독일만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있어 문명의 붕괴였고 역사의 오점이었다. 일본군대위안부 문제 또한 다르지 않다. 여전히 할머니의 저 주름 가득한 안에서는 피가 흐르고, 우리에게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되는 것이다.
장윤정의 노래처럼 할머니가 ‘우리에게 꽃이 될 그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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