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교수 ‘나눔의 집’ 사과 방문
[현장을찾아]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가 결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서 사죄의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끝내 이 교수의 사과를 거절했다.
지난 2일 밤 <문화방송> 100분 토론 과정에서 “일본군 성노예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형태’였다”는 일제 식민지 정신대 발언과 관련해 6일 오전 10시 나눔의 집 수련관을 찾아 7명의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100분 토론 당시 반대편 토론자로 나섰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동행한 이 교수는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들에게 ‘큰절’을 올린 뒤, 50분 가량 두 손을 모은 채 할머니들의 호통을 듣고,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교수는 이 자리에서 “이번 일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찾아뵙고 사과드리려고 왔다”며 “할머니들이 일제 강점기 성노예자라는 역사인식에 동의하며 철저한 역사청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발언 취지는 정신대와 관련한 일제 만행이 전쟁범죄라는 전제 아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협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해방 후에도 성착취가 있었던 만큼 총체적으로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며 “오해가 있었지만 어쨌든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 교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격앙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가르치는 당신같은 사람은 교수로서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한국인지조차 의심스럽다”며 “3일 안에 호적등본을 떼와라. 그리고 교수 자리에서도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호통쳤다.
“학자는 무슨 학자냐? 자격없다. 당신이 학생들을 다 버려놓았다. 우리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느냐?” (김군자 할머니)
“근본에 문제가 있다. 일본인 아니냐? 당장 호적등본 떼와라!” (이옥선 할머니)
“공부 좀 했다고 대단한거냐? 정말 헛똑똑이다. 동두천에서 몸파는 여자랑 어떻게 우리를 비유하나? 친일파 청산이나 제대로 해요.” (김을출 할머니)
이에 이 교수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할머니들의 고통을 더는 일에 동참하겠다. 할머니들의 울분을 가슴에 새기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의 격앙된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자 나눔의 집 안신권 국장이 “오늘은 더이상 얘기가 안되겠다”며 10시40분께 이 교수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 교수를 대신해 동행했던 안병욱 교수가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교수의 입장을 설명했다.
밖으로 나온 이 교수는 10시50분께부터 안 국장의 안내에 따라 나눔의 집 안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관람했다. 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활동 연표’ ‘위안소포도’ 등을 꼼꼼히 살피며, 틈틈이 수첩에 메모를 하기도 했다.
또 역사관 모금함에 손수 성금을 기탁하기도 했으며, 위안부 관련 서적 5권을 사는 등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역사관을 나온 이 교수에게 ‘다시 이곳을 찾겠냐’는 기자들이 묻자, 그는 “학생들이 이곳을 견학할 수 있도록 적극 권할 것이며, 시간이 되면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또 이날 사과와 관련해서는 “어제 해명서에서 밝힌 그대로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앞서 5일 발표한 해명서에서 “일본군 성노예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다는 일부 언론에서 유포하고 있는 발언이나 그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토론과정에서 직접 행한 적이 없다”며 “ 토론과정에서 송영길 의원이 제 멋대로 해석해서 덮어씌운 발언이 마치 저의 발언인 것처럼 보도한 <오마이뉴스>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한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나온 이 교수에게 한 할머니가 “책임지고 과거사 청산해달라”고 당부하자, 그는 “과거사가 청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분노를 깨끗히 씻지 못한 채 오전 11시40분께 함께 온 안병욱 교수와 자신이 직접 몰고온 소렌토 차량을 몰고, 나눔의 집을 떠났다.
한편 이 교수와 동행한 안병욱 교수는 “이 교수의 발언 자체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고, 결코 지금 알려진 것처럼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며 “토론에 처음 참여해서 그런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갈피를 못잡는 것 같아 일요일 오전에 전화해 나눔의 집에 함께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동행의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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