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 교수에게/ 김윤옥
와다 교수님, 70년대 한국 민주화투쟁시의 교수님의 긍정적 역할을 귀중히 여기는 한 사람으로서 이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사실 이 글은 지난 1월21일치 교수님의 <한겨레> 해외논단 기고 직후에 띄웠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논단의 흐름은 이런 것이었지요. “북·일수교 수립에는 한국의 응원이 필요한데 그 응원이란 구체적으로는 일본인들이 잘한 것도 칭찬해 주는 것이다. 과거청산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와 우익 속에서 그래도 `무라야마 담화'를 이끌어내고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국민기금)을 설립했던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지 않은가. 우익의 공격에 직면하고 있는 무라야마담화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북·일 국교수립은 어렵다.”
참고로 지금 `국민기금'의 이사장은 무라야마 전 총리이지요.
`국민기금'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공식적 사죄와 법적 국가배상 그리고 책임자처벌을 일본정부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패전 50돌의 해인 1995년에 3개정당이 합의해 `위로금' 성격으로 설치한 기금입니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국민기금'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이 사업을 반대하며 해산을 요구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이미 유엔인권위원회를 비롯해서 국제사회에서 명백히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런 중죄를 범하고도 `국민기금'을 앞세워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대표가 `국민기금'이 일본정부가 할머니들게 사과드리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요컨대 `국민기금'으로 모든 책임이 끝난다는 것이지요.
한국 정부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할머니들에게 `국민기금'을 받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으며 어려운 국고에서 `국민기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생활안정지원금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국민기금을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해 왔습니다.
그런데 `국민기금' 관계자들은 1997년 1월 외교적 상식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한국으로 와서 7명의 할머니들에게 국민기금을 지급한 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할머니들을 돈으로 유혹해 왔고 결국 할머니들 사이에 분열을, 할머니들과 지원단체 사이에 불신을 일으킨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 1월10일은 국민기금이 아시아피해국에 법적으로 공약했던 5년 기한이 종료하는 날이었지요. 그런데 99년부터 동결했던 한국사업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가 정대협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항의문을 발표하니까, 갑자기 2월20일부터 사업을 재개하고 5월1일까지 70일간 사업연장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70일간의 사업연장에서 얼마나 할머니들에게 유혹의 손을 뻗어 지급 인원수를 늘리려는지 모릅니다만 마지막 기회라며 돈을 흔들어 보이는 것은 피해자를 다시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지 않는지요?
뒤늦게나마 이런 공개편지를 드리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서 와다 교수님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일본사회에서도 `와다 교수가 하는 일이니 아시아 피해자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라는 인상을 시민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도 `와다 교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와다 교수님의 그간 행적을 볼 때, 저는 다니엘 벨이나 피터 버거와 같은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신보수주의화가 연상됩니다.
이러한 우려에서 오늘 공개편지를 통해 `위안부'문제와 `국민기금'의 대립의 이유를 분명히 묻고 싶습니다. 5월1일까지의 연장계획을 즉각 중지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국민기금'을 해체하십시오. 진정 이 공개편지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그리고 와다 교수님을 아끼며 쓰는 우정어린 글입니다.
김윤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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