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사죄·배상 요구' 하나된 남북/ 윤미향
지난 5월 3∼4일, 평양에서 열린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아시아지역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대협 윤정옥 명예대표를 단장으로, 정신대 할머니와 강제연행 피해 할아버지 등 남쪽 대표단 12명은 평양길에 올랐다.
평양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로 토론회가 열린 것은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1991년 일본, 남북 여성이 참여한 ‘아시아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토론회가 정신대문제를 주제로 열렸으며, 두 번째는 93년 11월, 남쪽에서 이효재· 윤정옥 당시 정대협 공동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평양토론회가 열렸다.
남북,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중국의 피해자들과 활동가들, 재미·재일 동포활동가, 미국 법률가 등 15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강제연행 피해문제, 역사왜곡 문제, 일본의 군국주의화 등 일제 강점하에서 자행된 피해사례와 활동을 보고하고, 각 국에서 진행된 활동보고 및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활동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번 토론회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평양에서 남북의 일제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만났다는 데 있다. 이것은 단순히 만남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징병 피해자가 한 테이블에서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한 목소리로 고발했으며,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에 일본 정부는 사죄하고 법적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나로 모았다.
둘째, 본 토론회를 일회성 회의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대해 나가기로 결의하고, 북쪽의 국제적인 협의기구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연대협의회’를 발족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세째, 본 토론회 두번째날인 5월 4일, 회의를 마감하면서 참가자들은 유엔인권 고등판무관과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와, 남북·해외 공동성명, 이렇게 세가지 공동 문건을 채택하였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에게 보내는 서한에서는 일본 정부가 유엔의 보고와 권고, 결의를 무시하고 있음을 지적하였고, 유엔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위한 조사단을 조직할 것을 제안하였다.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서한에서는 일본 정부에게 △진상규명과 사죄와 법적 배상 △대조선 적대시 정책 시정 △남북통일 실현을 위한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 방해를 중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무엇보다도 남북과 해외동포 참가단 대표는 공동성명을 통해서 일본정부에게 법적 책임 회피목적으로 만든 '국민기금' 해체를 촉구하였고, 우리민족에 대한 침략과 약탈, 강제연행과 강제징병 등에 대한 역사 자료들을 전면 조사, 공개하고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실천적인 대책을 촉구하였다. 아울러 남북·해외단체들은 일본에 의한 피해의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일본의 완전한 사죄와 배상을 위해 서로 연대 단합하여 범민족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였다.
평양에서 남북의 피해자들이 함께 만났고, 남북 활동가들이 아시아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연대를 다짐하고, 남북간의 결속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이번 토론회는, 이미 국제적인 주요관심사가 되어 있는 일본군‘위안부'를 포함하여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생각된다.
윤미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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